백제 의자왕의 진실 왜곡된 역사

의자왕

서기 660년 백제 마지막 왕 의자왕은 웅진성에서 나와 나당연합군에게 항복합니다.
나당연합군의 침략을 받은지 2주도 지나지 않아서 백제는 쉽게 무너저 버리는데 그 진실은 무엇일까요?

700년동안 군림하여 온 백제가 2주만에 무너진다는건 매우 의아스러운일인데
이때까지 우리는 그것을 의자왕 개인의 잘못으로만 돌리고 삼천궁녀라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지어냈습니다.

그러면 의자왕 항복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2008년 중국 북망산에서 예식진이란 사람의 무덤과 묘비가 출토되었습니다.
그는 당나라의 좌위위 대장군에 오른 백제 웅진출신 장군이라고 묘비에 기록되어잇으며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좌평이이였고 의자왕의 아버지인 무왕 시대에 주로 활동하였으며 웅진의 수장이였다고 볼수있고 예식진또한 그러하다고 볼수있습니다.

하지만 이 예식진의 묘비명에는 아무런 공적도 없습니다.
예식진이 백제출신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당나라에서 좌위위 대장군이라는 높은 직책에 오를수 있었던 까닭은무언가 커다란 공을 세웠기 때문이였을거라 생각합니다.

 예식진이란 사람의 이름은 어떠한 사서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대로 좌평이였으면 귀족집안이였을터인데 이름이 비문이나 삼국사기,삼국유사 등에서는 찾아 볼수도 없었지만 구당서에는 등장합니다.

구당서 소정방 편을 보면 그장군예식이의자왕과함께항복하였습니다.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의자왕과 함께 항복했던 예식과 북망산에 묻힌 예식진이 동일 인물임을 알수있습니다.
옛날 삼국시대에는 동일인물의 이름을 다르게 표기하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 예식이 아마도 중국으로 오면서 이름을 예식진으로 바꿧을것이라 여겨집니다.

 자신의 주군인 의자왕과 함께 항복하여 망국의 신하가 된 예식 그는 어떻게 좌위위 대장군이 되엇을까요?

그 비밀은 백제의 멸망과 관련이 있습니다.

 7세기 말 동북아시아에서는 고구려와 백제 왜 북방민족의 남북세력과 신라와 당 동서 세력이 팽팽히 맞대결하고 있을때였습니다. 그러던 중 백제는 나당 연합군의 침략을 받습니다. 흔히 삼국시대에는 어떠한 성을 공략하면 그 주변을 모두 점령하고 천천히 진군하는것이 보편적이였습니다.
하지만 나당연합군은 달랐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영토가 아닌 백제 멸망 이였죠.

나당연합군은 지방의 성들을 그대로 남겨둔체 바람처럼 사비성으로 달렸고 개전 5일만에 당군은 사비성 근처까지 왔고 신라군은 탄현을 넘었습니다.
나당연합군의 놀라운 진군속도에 백제 지휘부는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지도 못하였고 결국 신라와의 전쟁으로 뼈가 굵은 백전노장 의자왕은 당군은 신라군없이 전쟁을 할수없으리라는걸 깨닫고 신라군을 저지하기 위하여 계백에게 5천군사를 내어주며 신라군을 저지하게 합니다.

 계백의 결사대는 4전 4승의 신화를 이루어 내엇지만 결국 숫적 열세로 전멸하고 의자왕은 그시각 당군과 접전을 벌였지만 1만 전사자를 내고 패배합니다. 결국 의자왕은 사비성을 몰래 탈출하여 웅진성으로 총 지휘부를 옮겼습니다.

의자왕의 웅진성으로 피난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번째로 평야에 위치한 사비성보다는 험준한 산에 위치한 웅진성이 적과 싸우기에 유리하였고 그 옆에 흑치상지가 잇는 임존성도 있었을뿐더러 부왕시절부터 충성해 온 예씨 가문의 예식이 잇는 성이기 때문입니다.

의자왕은 사비성을 내주었지만 나당연합군은 백제의 전국토를 유린한것은 아니였고 중앙군은 무너졌지만 지방군은 아직 강력하였습니다. 백제는 5방으로 나뉘어져서 수도를 지켰는데 의자왕은 이를 이용하여 나당연합군을 사비성에 가두고 지방군을 모아서 사비성을 포위한뒤 때가오면 대 반격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상황은 점점 백제군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있었습니다.

신라로부터 보급로는 차단되었고 쌀이 수확되려면 2개월이나 남았는데 양식은 점점 줄어들고 시간이 지날수록 백제군은 더더욱 모이고 왜로부터 지원군도 와서 바닷길이 막히고 고구려로부터 지원군이 오면 그날로 나당연합군은 제대로 된 전투 한번 해보지 못하고 무너질것이 뻔하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상한점이 있습니다.

의자왕은 웅진성이 나당연합군의 침략을 받지도 않았는데 웅진성에 들어간지 5일만에 웅진성을 나와서 항복합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과연 무슨일이 5일동안 웅진성에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 일은 웅진의 총 대장인 예식과 무슨 관련이 있었을까요?

 다시 예식진의 묘비로 돌아가보면 그가 세운공이 김일제보다 뛰어나다고 하였습니다.
김일제는 흉노족이였는데 한나라에 귀순하여 큰공을 세운인물입니다.그래서 당나라에선 이민족 출신의 장군이 성공하였을때 김일제랑 비교하곤 했는데 백제 장군 예식진은 김일제보다 뛰어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무슨공을 세웠던 것일까?

구당서와 신당서를보면 기대장 예식 우장의자 래항 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요?
적국의 왕이 항복해왔단 뜻이면 의자왕이 문장의 주어가 되었을터인데 이문장에선 예식이 주어가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그 뒤의 문장도 저처럼 예식이 문장의 주어가 되어잇는부분을 보면 사관의 실수라 보기도 어렵습니다.

과연 저 문장의 뜻은 무엇일까요?

기대장 예식이 의자왕을 장하여 항복하여왔다?

여기서 우리는 장이란 한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은 명사일땐 장수 ,우두머리라는 뜻이지만 동사일때는 끌고오다 잡아서 오다라는 뜻이있습니다.

예식이 의자왕을 잡아서 항복해왔다? 실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러한 기록은 우리나라 신채호 선생이쓴 조선상고사에도 있습니다

웅진수비대장이 왕을 잡으려하여 왕이 자결하려하나 동맥이 끊기지않아 포로가되었다 라고 신채호 선생은 서술하였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예식진 즉 예식의 공은 자신의 주군과 조국을 배신한 것이죠.

 예식은 적에게 의자왕을 끌고 항복하여 부귀영화를 누릴것인가 아니면 결사 항쟁을 할것인가 갈등을 하다가 의자왕을 잡아서 소정방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백제는 무너진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망국의 왕 의자왕 그는 황음무도하여 백제를 무너뜨리게한 장본인이 아니라 활달한 성격의 정복군주였으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당연합군으로 부터 자신의 나라와 자신의 백성을 지키려고한 비운의 왕이 아니였을까요?

우리는 지금이라도 그가 백제를 멸망하게 한 장본인이며 사치를 일삼은 왕이 아니라 그에대한 객관적 평가를 해야합니다.

역사추적에서 방송됬던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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