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조의 재산 마크저커버그의 성공스토리

신기한 회사가 있습니다.
대학생이 만든 SNS사이트가 전세계로 뻗어나가고, 이회사 CEO는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회사의 CEO는 세계재벌 10위안에 드는 사람 중 가장 어립니다. ​
오늘의 성공스토리!
어린나이에 세계 재벌 10위 안에 드는 손꼽히는 부호이자 세계를 잇는 SNS 인스타그램을 품은 기업 ‘페이스북’의 CEO 마크저커버그 입니다. ​​​

페이스북창업자 마크저커버그

어린시절

1984년 뉴욕에서 치과의사 에드워드와 캐런 사이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게 됩니다.
이 아이는 어린시절부터 유대교 교육을 받았고, 13세때 유대교 성인식을 거치게 됩니다. (그런데 현재는 무신론자라고 밝혔습니다)​땅값 비싼 뉴욕에서 치과의사를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유대교 교육 까지 받았으니 이미 어린시절부터 어느정도 유복한 환경이 갖춰져있다고 볼수 있는 이 소년은 바로 마크저커버그 입니다. ​

저커버그는 1990년 (6살) 때 아버지로부터 Basic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고 11살때 소프트웨어 개발자 (이당시 대학생) 데이비드 뉴먼의 개인지도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미 어릴때부터 뼛속까지 공대 수업을 받았던 거죠 그는 어릴때 부터 대학원 관련수업 청강도 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중에는 회사(인텔리전트 미디어 그룹)에 고용되 시냅스 미디어 플레이어를 제작했다고 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사용자의 음악 감상 습관을 학습할 수 있도록 만든 뮤직플레이어 이었고, 마이크로 소프트에서 인수제안을 했으나 상남자 답게 거절했다고 합니다. ​​​

하버드 대

2002년 저커버그는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 하버드 대를 들어가게 됩니다.
흔히들 사람들이 똑똑한 사람들을 얘기할때 하버드와 서울대를 많이 이야기 하죠 부럽습니다..
​무튼 컴퓨터 천재 저커버그는 한국이 붉은악마로 물들어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던 그때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컴퓨터와 심리학을 전공하며 지금의 사업기반이 되는 스킬들을 다지기 시작합니다. ​

그런데 역시 천재들은 남다르다고 저커버그는 사회성이 조금 떨어졌다고 합니다.
내성적인 성격이여서 주로 기숙사에서 보냈고, 정장을 않좋아했는데 유일하게 그가 정장을 입고 참여하는 사교 모임 동아리가 있었습니다.

그가 유일하게 규칙을 인정하고 가입했던 동아리 였죠
그는 이렇게 조용하게 대학 라이프를 즐기고 있던 중 엄청난 변화를 맞게 됩니다. ​​​​

페이스북의 탄생

2003년 저커버그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사이트를 하나 만들게 됩니다. ​
‘페이스 메쉬(Facemash)’라는 사이트를 만들게 되는데 이 사이트는 하버드사이트의 서버를 해킹해 여학생들의 입학사진을 다운받아 지금의 밸런스게임같은 투표사이트를 만들게 됩니다.

이 사이트는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지만, 하버드 당국에 적발되어 퇴학위기까지 몰리게 됩니다.
하지만 수익창출이 일어나지 않은점을 고려해 선처를 받게 되죠 ㅎㅎ. ​

그때 그 소문을 들은 하버드 재학생 ‘윙클보스’ 형제가 저커버그를 찾아와 지금의 페이스북 모델을 이야기하며,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말합니다. ​이때 저커버그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

(여담으로 저커버그는 윙클보스 형제의 아이디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문제로 윙클보스 형제와 소송을 벌이게 되지만 결국 윙클보스형제에게 페이스북의 주식을 주게됩니다. )

​​​현재의 SNS 모델을 생각해내게 된거죠

2004년 
저커버그는 일주일만에 현재 페이스북의 초기 모델인 The facebook 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원래는 하버드 재학생용 인맥쌓기 사이트였지만, 엄청난 유행을 일으키며 다른 학교에까지 퍼지게 됩니다.
2005년에는 고등학생도 가입이 가능하게 만들었고, 2006년에는 만 13세만 넘으면 가입이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

갈등

​페이스북 같은 사이트를 만드는건 혼자 만들기 힘듭니다.
물론 사이트제작만 하는건 혼자도 가능하지만 사이트의 모양을 만들고 서버를 동시에 만지는 풀스택 개발을 하기는 정말 쉽지않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래밍 천재 저커버그의 천재성이 드러나게 되죠 그는 초반에 혼자 사이트를 구축하게 되고, 그당시 같이 다니던 친구 왈도 세브린에게 초기비용을 공급받으며 서버를 구축하며 주변 지인들을 끌어들여 회사를 차리게 되죠

​(초기 비용을 공급했던 왈도 세브린은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이미 하버드 재학중이던 시기에 주식을 통해 수억대의 재산을 쌓았다고 합니다. )

​결국 페이스북 초창기에 저커버그와 왈도 세브린의 공동창업이었고 돈은 왈도 세브린이 대부분 부담을 하며 CEO는 저커버그 CFO(최고재무관리자)는 왈도 세브린이 맡아서 하게 되는데 ..

저커버그가 왈도 세브린을 배신해 공동창업자 이름에서 빼버리게 됩니다.

이 문제로 둘은 소송싸움을 하게 되지만, 왈도세브린의 승리로 다시 공동창업자에 이름을 올렸고, 왈도 세브린은 대학 졸업후 경영에는 참가하지 않고 소수의 지분만 남겨놨지만 소수의 지분이라도… 페이스북의 상승을 통해 수천억의 재산을 쌓게 되었습니다​​ 역시 하버드생…

4번 타자와의 만남

페이스북의 성장을 지켜보던 사람이 한명 있습니다. 바로 ‘숀 파커’라고 19살때 ‘냅스터’라는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를 만들었던 사업가 인데 그는 페이스북의 성장을 보고 저커버그를 만나 본격적으로 사업화 하는데에 도움을 주기 시작합니다.

초기 페이스북의 사장을 맡은 숀파커는 여러 투자사들을 만나 투자를 받아오기도 하고 경영자로써 부족한 저커버그의 경영능력의 기초를 다지게 도와 주기도 했습니다. ​

현재의 야후 사이트

2006년 예전 포털 사이트를 장악하던 야후에서 10억 달러의 인수제의를 했으나 저커버그는 거절했고 벤처캐피탈 에서 2억 5000만 달러 (약 2700억 정도) 를 투자 받습니다.

후에 그당시 야후 CEO였던 테리 세멀은 10억달러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말했습니다.
(예전엔 네이버보다 야후가 훨씬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벌써옛날..)

​2007년 마이크로 소프트에서 페이스북을 150억달러 (약 17조원) 에 달하는 금액으로 인수제의를 하지만 상남자 저커버그는 거절을 합니다.
그리고 페이스북의 주식 1.6%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약 2600억을 투자하게 됩니다.

​저커버그는 경영자의 자세를 배우기 위해 스티브 잡스와도 자주 연락하며 경영에 대해 배웠다고 합니다. 둘다 성격이 특이하기로 유명한데 서로 잘 맞았나 봅니다. ​​

페이스북의 역사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이후는 뭐 워낙 유명하니 다들 아실꺼라 생각합니다. 그냥 승승장구했죠 뭐ㅎㅎ

​혹시 여러분들 중 컴퓨터 공학과를 진학하기 원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꼭 한번더 생각해보세요
정말로 자기와 맞는 직업인지 체험을 해보시는걸 추천드립니다. 단순히 취업잘된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

못버티는 사람도 정말 많고요 생각 잘 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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