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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과 상대성이론의 형성

1. 특수 상대성 이론

양자론과 함께 20세기 물리학의 토대를 마련한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19세기 후반에 대두되었던 고전 역학과 고전 전자기학 사이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나타났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전자기학 분야에서는 움직이는 물체의 전자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양한 전자기 법칙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전 전자기 법칙들은 갈릴레오 변환을 할 경우 불변이 아니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서로 등속도로 움직이는 관찰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법칙이 동일하게 유지되지 않는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상대성이론
아인슈타인

하지만 19세기 동안 이를 문제로 여기고 해결하려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대다수의 물리학자들은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으며 압축되지 않는 완전 탄성체인 가상의 물질 에테르(aether 혹은 ether)를 가정하여 전자기 현상을 설명했습니다. 고전 전자기학을 확립했던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 이후의 과학자들은 에테르의 성질에 대해 다양한 논의를 전개했습니다.

맥스웰

1887년, 미국의 마이켈슨(Albert Abraham Michelson, 1852~1931)과 몰리(Edward Williams Morley, 1838~1923)는 자신들이 고안한 간섭계를 이용해 지구의 운동과 에테르의 상호작용을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마이켈슨 간섭계는 서로 직각으로 진행하는 빛을 간섭시키는 장치입니다.

마이켈슨과 몰리는 이 장치를 이용해 동일한 광원에서 나온 빛을 양분하여, 지구의 자전 방향과 그 직각 방향으로 같은 거리만큼 왕복시키고, 이때 발생하는 광행로차를 검출하려고 했습니다. 에테르 이론에 따르면 지구의 자전 방향으로는 지구의 자전으로 인해 빛의 속도가 변하여, 그 직각 방향으로 왕복한 빛과 광행로차가 생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광행로차를 보여주는 간섭무늬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빛의 속도는 광원의 운동에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이켈슨과 몰리를 포함한 당시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고전 전자기학의 테두리 내에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로렌츠(Hendrik Antoon Lorentz, 1853~1928)는 마이켈슨-몰리의 실험적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지구의 운동 방향으로 물체가 제한된 범위 내에서 수축한다는 가설을 제기하기도 헀습니다.

마이켈슨-몰리 간섭계

한편, 아인슈타인은 1905년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동역학에 관해서'(Zur Elektrodynamik bewegter Körper)라는 논문에서 광속도 불변의 원리를 바탕으로 등속도로 움직이는 모든 관측자들에게 고전 전자기 법칙이 불변으로 유지되는 새로운 시공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그 결과 고전 전자기학과 고전 역학 사이에서 존재했던 불일치가 해소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동역학에 관해서’일부

아인슈타인은 마이켈슨-몰리 실험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그 실험은 특수 상대성 이론의 탄생에 그리 큰 기여를 하지 않았습니다. 특수 상대성 이론의 탄생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은, 피조(Armand Hippolyte Louis Fizeau, 1819~1896)가 1851년 발견한 사실과 제임스 브래들리 (James Bradley, 1693~1762) 가 1728년 발견한 사실입니다.

피조는 빛이 속도 v로 움직이는 액체(굴절률 n) 속을 지나는 경우, 그 액체 속에서 움직이는 빛의 속도는 액체의 굴절률의 역제곱에 비례하여 고전 역학적인 속도의 합성 공식에 벗어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한편 브래들리는 별의 광행차(**)를 이용해 빛의 속도를 측정했습니다.

또한 아인슈타인 자신도 움직이는 자석과 코일 사이에서 나타나는 전자기 법칙 내의 불일치 현상에 불만을 느낀 점도 그가 새로운 역학 체계를 찾아나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피조의 실험장치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가장 기본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은 상대성 원리와 광속불변의 법칙입니다.

상대성 원리란 정지하거나 등속으로 운동하는 관측자에게 같은 물리법칙이 성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광속 불변의 법칙이란 관측자가 정지하건 움직이건 빛의 속도는 항상 똑같이 측정된다는 것입니다.(***)

상대성 원리와 광속 불변의 법칙을 고수하기 위해 그는 서로 다른 관성계에서 측정한 물리량이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일정하게 운동하는 계에서 시간이 지연되고 그 계에서 측정하는 물체의 길이가 줄어든다고 이야기한 것이 바로 그 예입니다.

바야흐로 특수 상대성 이론은 그전까지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시간 및 길이 등을 상대적인 양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시간 지연을 입증한 세슘 원자 시계 : 여객기에 원자 시계를 태워서 지구 한 바퀴를 돌면서 시간을 측정할 경우 지상의 원자시계보다 시간이 지연됩니다.

한편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는 질량-에너지 등가성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질량-에너지 등가성은 빛의 속도에 비해 무시할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에 힘이 작용하면, 힘이 그 물체에 일을 한 것이므로 물체의 에너지가 증가하고, 물체의 운동량 또한 증가합니다.

속도에는 일정한 한계 (광속)이 있으므로, 물체에 가해지는 에너지나 운동량이 증가하는 것을 설명하려면, 물체의 질량이 증가한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빛의 속도에 비해 무시할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에 가하는 에너지 일부는 물체의 속도를, 일부는 물체의 질량을 증가시키는데 사용됩니다. 즉 질량과 에너지는 서로 전환될 수 있고, 이러한 관계를 질량-에너지 등가성이라고 합니다.

질량-에너지 등가성을 이야기할 때 가장 유명한 공식 E=mc^2

물리학계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널리 받아들이게 된 데에는 독일 물리학계의 거물인 막스 플랑크의 역할이 컸습니다. 플랑크는 당시 무명이었던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던『물리학 연보』 (Annalen der Physik)의 편집인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베를린 대학에서 여러 유능한 제자들을 길러내고 있었던 독일 과학계의 중심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상대성 이론에 관한 주제를 선택하라고 독려했고, 그 자신도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관한 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플랑크와 아인슈타인

2. 일반 상대성 이론

아인슈타인이 1905년 제기한 특수 상대성 이론은 등속으로 움직이는 관성좌표계에서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어 가속 좌표계에서도 적용되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완성하게 됩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특수 상대성 이론의 두 가지 전제인 상대성 원리와 광속 불변의 원칙에 중력장과 이에 상응하는 기준 좌표계의 가속 운동이 물리적으로 완전히 동등하다는 ‘등가 원리’를 합치고, 구부러진 공간(리만 공간)의 기하학적 구조에 대한 중력 이론을 더하여 전개되었습니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광속 불변의 원칙을 만족시키기 위해 시간/길이/질량 등의 물리량이 상대적인 것이라고 했다면,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는 가속 좌표계에서도 상대성 원리를 만족시키기 위해 물체의 존재에 의해 시공간이 영향을 받는다(시공간의 휘어짐으로 만유인력의 장이 생성됨)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물체의 존재로 인해 시공간이 휘어져 생긴 만유 인력의 장

아인슈타인은 1916년『물리학 연보』에 발표한 일반 상대성 이론 논문에서 자신의 이론을 검증할 수 있는 세 가지 예를 제시했습니다. (1. 수성의 근일점이 1세기에 43" 만큼 궤도상에서 돈다는 것, 2. 빛이 중력장 속에서 휜다는 것, 3. 중력장 속에서의 빛의 적색 편이(redshift)가 일어난다는 것) 수성의 근일점이 궤도상에서 돈다는 것은 이미 19세기 중반에 프랑스의 천문학자 르베리에(Urbain Jean Joseph Le Verrier, 1811∼1877)가 관측했고,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이 이 르베리에의 관측 결과와 일치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르 베리에

당시에 빛이 중력장 속에서 휜다는 것과, 중력장 속에서 빛의 적색 편이가 일어난다는 것은 아직 확인되고 있지 않았습니다. 태양 주변에서 별빛이 휘는 현상은 제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 개기일식 때 영국의 일식 관측대에 의해 처음으로 관측되었습니다. 1919년 일식 때 아인슈타인의 예언을 검증하기 위한 일식 관측대가 조직되었고, 그 해 5월 29일 두 팀의 일식 관측대들은 아인슈타인 효과의 존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최초의 사진들을 얻어냈습니다. 그 뒤 1919년 11월 6일 긴급 소집한 영국 왕립학회와 왕립 천문학회 합동 회의에서는 에팅턴(Arthur Stanley Eddington, 1882∼1944)을 중심으로 해서 이 관측 결과를 검토한 끝에 아인슈타인의 예언이 확증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다음 날 이 사실이 언론 기관을 통해서 대서특필되면서 아인슈타인은 20세기 과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로 일반인들에게 남게 됩니다.

태양 주변에서 빛이 굴절됨을 보여준 1919년의 일식 관측 사진

한편 중력장 내에서의 빛의 적색 편이는 1959년 하버드 대학교의 로버트 파운드 (Robert Vivian Pound, 1919~) 와 글렌 레브카(Glen Anderson Rebka, 1931~) 가 하버드 대학교의 제퍼슨 연구소의 꼭대기와 바닥에서의 광원의 편이를 관측한 실험으로 입증하였습니다.

중력장 내에서의 빛의 적색 편이를 입증한 실험이 이루어진 제퍼슨 연구소

(*) 고전역학적 이론에 따르면, 움직이지 않는 액체 (굴절률 n)에서 빛의 속도는 c/n이 됩니다. (c : 진공에서의 빛의 속도)
따라서 액체가 속도 v로 움직일 경우, 고전 역학적 관점에서는 액체 내의 빛의 속도 V = c/n + v가 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러나 피조는 실험적으로 V = c/n + v(1-1/n^2)가 됨을 입증했습니다.

(**) 광행차 (엄밀하게 말하면 브래들리가 관찰한 것은 항성광행차입니다) 란, 지구의 자전, 공전 운동 때문에 천체의 겉보기 위치가 실제 위치와 차이가 생기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원리로 인해 광속을 넘어서는 입자, 즉 타키온의 존재가 부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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