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서 말하는 살수의 위치 (10분역사)

안녕하세요.
오늘은 고수(髙隋) 전쟁의 살수대첩, 그 격전지인 살수(薩水)의 위치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살수

강단사학에서는 살수의 위치에 대해 청천강(淸川江)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이것이 학계의 통설로서 받아들여 지고 있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관련 기록들을 살펴 봄으로서 살수(薩水)의 위치가 청천강(淸川江)인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1. 대무신왕(大武神王)조  살수 기록

첫번째로 확인할 기사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27년 기사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二十七年, 秋九月, 漢光武校勘 001帝遣兵渡海伐樂浪, 取其地爲郡·縣, 薩水已南屬漢.

27년(44) 가을 9월에 한나라의 광무제가 병력을 보내 바다를 건너 낙랑을 치고, 그 땅을 빼앗아 군현으로 삼으니,
살수(薩水) 이남이 한(漢)에 속하게 되었다
卷第十四 髙句麗本紀 第二 – 대무신왕(大武神王)

대무신왕은 고구려 3대 왕으로 초기 도읍지 졸본과 그 부근의 국내성으로 천도가 이루어진 초기 고구려 상황입니다.
또한 광무제는 후한 시기이므로 중국과 강단사학에서 주장하는 후한은 강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강단사학에서는고구려의 초기 도읍지를 환인의 졸본으로, 낙랑군의 위치를 북한 평양으로 규정하고 광무제가 바다를 건너서 치고 낙랑을 정벌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위 지도의 내용을  근거로 광무제가 낙랑을 공격한 루드를 살펴보면 A해석으로 이렇게 바다를 건넌 것으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초기도읍지 졸본을 의무려산으로, 낙랑군의 위치를 하북성으로 보면 이는 전혀 다르게 B해석 처럼 해석됩니다.

과연 어떤 해석이 맞는 걸까요? 그런데 잘 살펴보면 A해석은 기본적으로 말이 안됩니다. 광무제의 한나라 수군이 고구려 강역쪽으로 들어 와서 바로 옆에 있는 고구려는 공격하지 않고 엉뚱하게 바다를 건너 낙랑을 치고 있습니다.
과연 이게 상식적인 해석일까요??

오희려 B해석 처럼 한나라 수군이 바다를 건너 낙랑을 기습 공격하고 살수 이남을 한나라의 강역으로 속하게 했다는 것이 이치에도 맞고 자연스러운 해석입니다.

2. 태조대왕(太祖大王)조  관련 기록

이번에는 고구려 6대 태조대왕의 관련기록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四年, 秋七月, 伐東沃沮, 取其土地爲城邑. 拓境東至滄海, 南至薩水.

4년(56) 가을 7월에 동옥저(東沃沮)를 정벌하고 그 땅을 빼앗아 성읍(城邑)으로 삼았다.
영토를 넓혀 동쪽으로 창해(滄海)에 이르고 남쪽으로 살수(薩水)에 이르렀다.

卷第十五 髙句麗本紀 第三 – 태조대왕(太祖大王)

6대 태조대왕에 이르러 고구려가 강역을 확장하여 동쪽으로는 창해로 확장하고 남쪽으로는 살수 방향으로 확장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구려의 남쪽(薩水)에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창해(滄海)의 위치입니다. 창해는 보통 발해를 지칭하는 말로서 다음의 기록을 보면 창해가 발해임을 알 수 있습니다.

東臨碣石 以觀滄海

동쪽 갈석산에 임해서 창해를 바라보노라.
서기 207년 위(魏)나라 조조(曹操)의 시, 관창해(觀滄海)

 갈석산에서 바라 볼수 있는 바다는 발해입니다. 그러므로 창해는 발해가 됩니다.

즉 이 두가지 사실만 보더라도 강단 사학에서 주장하는 청천강 설은 삼국사기 사료에도 맞지 않는 엉터리 해석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영양왕(嬰陽王) 관련 기록

이번에는 고수(髙隋) 전쟁에 기록된 살수의 위치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이때 요수(遼水)에 있는 평양성(平壤城)은 장수왕이 천도한 하북성 노룡현 평주(平州)의 평양성입니다.

既恃驟勝, 又逼群議, 遂進東, 濟薩水, 去平壤城三十里, 因山爲營.

[수나라 우문술은] 이미 잦은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을 믿었고, 또한 여러 의견에 몰려서 마침내 동쪽으로 진격하여, 살수(薩水)를 건너 평양성(平壤城)으로부터 30리(里) 떨어진 곳에다가 산(山)에 의지하여 군영(軍營)을 세웠다.

卷第四十四 列傳 第四 – 을지문덕(乙支文德)

수나라가 전쟁을 하기 위해 모인 집결지는 탁군(涿郡)이라고 알려지고 있으며 수나라 군대는 탁군에서 출발해서 계속 진격하여 살수를 건너 평양성에서 30리 위치의 산(山) 중턱까지 진군하여 군영을 설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살수(薩水)의 위치는 어디인가?

이번에는 살수(薩水)가 될수 있는 후보들을 찾아 보았습니다. 살수의 위치로 비정할 수 있는 강은 영정하(永定河), 북운하(北運河), 해하(海河)에 이르는 강으로서, 특히 해하(중국어: 海河, 병음: Hǎi Hé, 표준어: 하이허강, 沽河라고도 불림)는 화북지역의 최대의 하천으로서 북운하(北運河), 남운하(南運河), 대청하(大清河), 자아하(子牙河), 영정하(永定河)의 5개의 하천이 합류하여 만들어지는 대규모 하천으로 유역의 총면적은 31.8만km2, 유역의 총인구는 1.24억에 달하는 하천으로 발해로 흘러 갑니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에서 수나라 30만 대군을 괴멸 시킨 사건을 보면 아마 5개의 하천이 모두 합류하는 해야(하이허강)가 실제 살수대첩의 수공 사건이 일어난 위치가 아닐까도 생각됩니다.

정리해보면 강단사학에서 주장하는 청천강 살수설은 삼국사기의 기록과도 전혀 맞지 않는 허구의 사실임을 알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의 청천강으로는 30만 대군을 괴멸시킨 살수대첩 사건을 제대로 설명 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가지 기록들을 보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강은 영정하(永定河), 북운하(北運河), 해야(海河) 로 보는 것이 가장 사료로서 적합하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영정하를 습수(濕水)라고도 하는데 혹시 여기에서 이름이 나온 것이 아닌가도 생각해 봅니다.

​결론적으로 아무리 사료를 끼워 맞출려고 해도 청천강은 절대 될수 없습니다.
최소한의 기초 사료인 삼국사기도 제대로 분석도 안하고 엉터리로 살수의 위치를 비정하면서, 여러 매체에서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은 뻥이라고 외치고 다니는 강단사학자들을 보면 참으로 한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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