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 계승이 없는 발해의 미스테리 1편

발해에는 ‘알려진 왕’ 이 총 15명이 있죠.

(사실 역사에 누락된 왕이 있다는 설도 존재합니다. 14대왕인 대위해 역시 1940년에 중국의 역사학자인 김육불 선생님에 의해 당회요에서 밝혀졌으니 말이죠.)

그 왕계를 살펴보면

1대 발해의 왕 고왕 대조영(698~719)
2대 발해의 왕 무왕 대무예(719~737)
3대 발해의 왕 문왕 대흠무(737~793)
4대 발해의 왕 폐왕 대원의(793)
5대 발해의 왕 성왕 대화여(793~794)
6대 발해의 왕 강왕 대숭린(794~809)
7대 발해의 왕 정왕 대원유(809~812)
8대 발해의 왕 희왕 대언의(812~817)
9대 발해의 왕 간왕 대명충(817~818)
10대 발해의 왕 선왕 대인선(818~830)
11대 발해의 왕 대이진(830~857)
12대 발해의 왕 대건황(857~871)
13.?왕 대현석(871~894 or 882)
14대 발해의 왕 대위해(882 or 894~905 or 906)
15대 발해의 왕 말왕 대인선(905 or 906~926)

​이 글을 읽고 다시 보면 좀 쇼킹하겠지만,
파란색으로 체크해놓은 왕을 제외한 모든 계승이 몽땅 비정상적으로 이루어진 계승입니다.

 저 중에 대위해와 대인선은 왜 몇대 왕인지 ?표가 붙냐면,
이 사이에도 숨겨진 왕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정도로 발해 자료는 부족합니다. ㅠ_ㅠ
마음같아서는 포크레인을 끌고 다니면서 발해가 세워졌던 만주땅을 좀 파보고 싶은 기분이네요.

발해

​자. 보통 국가의 세습계승은 뭐로 이뤄진다? 장자계승이죠.
사실 별로 안 이뤄지지만 말이죠.
조선의 경우에도 적장자 세습은 몇번 없습니다.
4번이었나? 조선사 전공이 아니라 모르겠네요.
그리고 아무리, 개판이어도 적장자나 하다못해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 계승은 많이 일어나죠.

그런데……

​우리의 발해는 그조차도 거의 지켜지지 않습니다…. 자 우선….저 위의 발해 왕계표 보셨죠?
저 중에서 아버지->아들로 이어지는 계승상속이 몇번이나 있을까요? 그래도 왕이 15명은 존재하니까,
적어도 대여섯번은 있겠지??? 에이 그렇겠지????

​는 말도안돼는소리. 정확하게 사료에 확인된 것은….

고왕->무왕, 무왕->문왕, 강왕->정왕, 대건황->대현석 이렇게 뿐입니다… 그럼 고왕은 발해의 창시자니까 제외하고, 남은 4명이 전부라는 거죠.
무왕, 문왕, 정왕, 대현석 이렇게인데 저는 대현석은 개인적으로 반신반의합니다.

이유는 아래에.

무왕

​구당서 북적열전 발해말갈 中

-개원 7년에 조영이 죽으니 현종(당 현종)이 사신을 보내어 조제하고, 이어서 그의 적자 계루군왕 대무예를 책립하여 아버지의 뒤를 이어 좌 효위대장군 발해’군왕’ 홀한주도독으로 삼았다.

​적자! 무려 적자입니다!…. 거기다가 ‘계루’군왕까지 했었군요!….
왜 발해 국왕도 아니고 군왕으로 삼은지는 아실 분은 아시겠지만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신당서 북적열전 발해 中

-현종 개원 7년에 조영이 죽으니, 그 나라에서 사시(私諡 : 사사롭게 올린 시호. 여기서는 당 허락 안받고 지들끼리 올린 시호라는 의미로 써있습니다.)로 고왕이라 하였다.
아들 무예가 발해의 왕위에 올라 영토를 크게 개척하니….(이하 생략)

​자치통감 당기 현종 中
-당 현종이 명하여 아들 무예가 발해의 왕위를 이었다.

​책부원구, 삼국유사, 발해고에도 나오지만 ‘똑같은 말만 반복’이라 생략하겠습니다.
진짜 중요 토씨는 하나도 안틀려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정상적으로 고왕에게서 이어받은 모범적 케이스.

문왕

​구당서 북적열전 발해말갈 中
-아들 대흠무가 왕위를 이었다.
사신을 보내 조문하고 대흠무를 책봉하였다.

​신당서 북적열전 발해 中
-아들 대흠무가 즉위하여 연호를 대흥으로 고쳤다.

​자치통감 당기 현종 中
-8월, 아들 대흠무가 즉위하였다.

​여기도 정상적으로 아버지에게서 발해의 왕위를 이어받은 케이스입니다.
별 참고할거 없습니다.

정왕

구당서 북적열전 발해 中
-대숭린의 아들 대원유를 은청광록대부 검교비서감 홀한주도독으로 삼고, 전과 같이 ‘발해국왕’으로 삼았다.
그 사이 발해왕에게 주는 타이틀이 군왕에서 국왕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눈치채신 분?
눈썰미 좋은 분입니다.

신당서 북적열전 발해 中
-아들 대원유가 즉위하여 발해의 연호를 영덕으로 고쳤다.

대현석

신당서 북적열전 발해 中
-대현석이 즉위하였다.(끝??)

발해고
-대건황의 아들이다. 의종 때인 함통 시기에 사신을 세 차례 파견하여 알현했다.

​발해 말기의 안습 기록으로 인해 이게 다입니다. 그런데 출처가 발해고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발해고를 100퍼센트 신뢰하지 않습니다.
유득공 선생께서 고생하면서 쓴 것은 맞는데,
문제는 이 발해고는 1차사료가 아니며, 오류가 없는게 아니고, 특히나 대위해가 아예 빠져 있는 사료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현석이 대건황의 아들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자. 그럼 여기서 좀 의심스러운 대현석까지 껴 주면 15명의 왕 중에, 딱 4명만이 발해의 왕계에서 부자계승입니다.
전체의 30퍼센트도 안됩니다.
그럼 여기서 궁금한게 생기죠. 자. 그럼 나머지 발해의 왕들은 어떤 계승일까?

문왕->폐왕

신당서 북적열전 발해 中
-(문왕의)아들 대굉림은 일찍 죽고, 족제 대원의가 즉위하였으나 시기하고 포학하여 1년만에 사람들이 그를 죽였다.​

아들이 일찍 죽고, ‘족제’ 라는 이상한 사이인 대원의가 발해의 왕으로 즉위합니다.
족제비도 아니고 말이죠.
친척동생 정도로 쓰면 되는 말인데,
성과 본이 같은 사람들 가운데 유복친 안에 들지 않는 같은 항렬의 아우뻘인 남자.
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에 적혀 있습니다.


결국 폐왕은 문왕의 직계가 아닙니다. 사촌 내지 육촌형제 정도라고 추측만 될 뿐입니다.
(발해의 건국자 대조영도 무왕 말고 아들이 더 있었고, 무왕 역시 마찬가지라 누구 쪽인지는 사실확인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왕위 다툼 or 시해의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그 정황을 살펴보면,

​1.폐왕은 문왕의 직계자손이 아니다.
2.문왕 말기에 상경에서 동경으로 발해의 수도를 옮겼다.

신당서 북적열전 발해 中
-정원 연간에(785~804) 동경으로 발해의 수도를 천도하였다.

​3.문왕의 자손이 많은데 하필이면 친척동생인 대원의가 즉위했다.
4.대놓고 사서에 시기하고 포학하다고 적혀 있고, 1년만에 사람들에게 죽었다고까지 나온다.

​이것들을 종합해보면, 폐왕이 비정상적으로 발해의 왕위에 오른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리고 폐왕은 문왕 시기에 문왕 말기의 권력누수 상황을 주도한(이것 역시 나중에 다룰 생각입니다.) 꽤 권력이 있는 권신이었거나, 최소한 이 현상에 관계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개인추측이지만 문왕을 시해했거나, 문왕의 유조를 날조하거나 자신이 대놓고 빼앗았을 가능성도 보입니다.
어느것이던지 좋은건 아니죠.
그리고 그 다음에 다시 문왕의 적장손인 성왕이 잇고, 그다음을 문왕의 작은아들이나 막내아들로 추정되는 강왕이 이은 것을 보면, 폐왕은 적장손인 성왕을 구실로 세운 쿠데타를 당해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폐왕이 왕위를 찬탈 내지 도둑질한것을 좋지 않게 보았을 강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기하고 포학하다고 대놓고 쓰여있는 데에는 당연히 그러한 정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폐왕->성왕

​신당서 북적열전 발해 中
-대굉림의 아들 대화여를 추대하여 발해의 왕으로 삼았다.
상경으로 환도하고, 연호를 중흥으로 고쳤다.

​자치통감 내용도 같습니다.
발해고 내용 역시 순서만 다르고 같은 내용입니다.
죽은 문왕의 태자(부왕) 대굉림의 아들입니다. 문왕 사후 출신도 어정쩡한 폐왕이 잇고, 그 이후에
죽은 태자의 아들이 이제서야 제대로 왕위를 잇는 것을 보면, 확실히 폐왕의 계승은 비정상적인 계승이며, 찬탈이나 대국민사기(?)의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폐왕이 제거되고 다시 수도를 상경으로 옮긴 다음,
문왕의 적손인 성왕이 왕위에 오르는거까진 좋습니다.

​그런데…………….밑을 보시면…..황당한 일이 또 터집니다.

​성왕->강왕

구당서 북적열전 발해말갈 中
-대숭린을 발해’군왕’으로 책봉하였다.

이거도 좀 스토리가 있는데요,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충 스포하자면,
발해군왕작위를 보내주자 발해에서 따져서 다시 국왕으로 받아왔습니다.

​신당서 북적열전 발해 中
-대흠무(문왕)의 작은아들 대숭린이 즉위하여 연호를 정력(?!)으로 고쳤다. 우효위대장군을 제수하고,왕위를 잇도록 하였다.

자치통감 당기 덕종 中
-대흠무의 작은아들 대숭린이 즉위하니 강왕이라 한다. 연호를 정력으로 고쳤다.

발해고
-강왕은 이름이 대숭린이며 문왕의 손자다. 연호를 정력으로 고쳤다.

오기 나왔습니다. 혹시나 가능성이 있나 보면, 모든 사료 중에 발해고 혼자 손자라고 틀려 놨습니다.
그래서 비교하려고 발해고를 일부러 꺼낸겁니다.

위의 사료에서 살펴보면, 강왕은 문왕의 태자의 아들인 성왕의 삼촌입니다…….

조카 다음에 삼촌이 왕을 한다?… 게다가 성왕의 재임기간는 6개월도 되지 않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럼? 뭔가 수상한 기분이 들죠. 이거 고려랑 조선에서 본거같은 기분이 드네요.
그런데 사료가 없으므로 추측의 영역일 뿐입니다. 과연…진짜로 병이나 사고로 일찍 죽었을까요?
아니면 숙부의 강요로 인해 양위하거나,살해당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강왕->세 아들(정왕, 희왕, 간왕)

이 세명은 셋다 합쳐봐야 재위기간이 809~818년으로, 달랑 9년입니다. 그 뒤에 왕이 되는 선왕의 12년
(게다가 선왕은 즉위당시 꽤 나이가 든것으로 추측됩니다.)보다도 세명이 더 짧습니다. 현재 발해사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 나중에 독자적인 이야기를 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세트로 묶었습니다.

정왕

구당서 북적열전 발해말갈 中
-대숭린의 아들 대원유를 은청광록대부 검교비서감 홀한주도독으로 삼고, 이전과 같이(너희들도 이제 기록쓰기 귀찮아졌구나?…) 발해국왕으로 삼았다.

​나머지 신당서, 자치통감, 책부원구 등 특이점 없이 모두 같은내용 돌려쓰기 수준입니다.

희왕

​구당서 북적열전 발해말갈 中
-대원유의 큰 동생 권지국무 대언의에게 은청광록대부 간교비서감(정황상 발해왕들에게 전통적으로 주어지던 검교비서감의 오타로 보입니다.) 홀한주도독으로 삼고 발해국왕으로 책봉하였다.

역시 나머지 기록 다 똑같습니다….참고로 저 권지국무라는 직책은 발해사에서 상당히 많이 나오는 직책으로,

1.고위 왕족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주로 맡던 자리이다.
2.권지국무를 맡은 사람은 다음 왕으로 나오는 빈도가 매우 높다.

라는 권신의 필수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다음편에 나오는 비정상적으로 발해의 왕계를 가져간 것으로 강하게 추정되는 선왕과, 대건황 역시 이 작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간왕

이 양반은 성왕처럼 너무 빨리 죽어서 그런지 구당서 북적열전 발해말갈에 사신을 보내 내조하고 형인
대언의의 죽음을 알렸다고만 나옵니다.
년단위로 버틴 형들과 달리 너무 빨리 죽었기 때문에(817~818) 당에서 책봉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신당서 북적열전 발해 中
-(희왕의)동생 대명충이 즉위하여 발해의 연호를 태시로 고쳤다.

​개인적인 추측인데, 이 사신이 당 조정에 가서 인사드리고 보고할때 간왕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셋은 셋다 강왕의 아들인데, 웃긴건, 간왕은 모르겠는데, 정왕과 희왕은 각각 사신으로 갈만큼 장성한 왕자가
있었다는 것이 기록에서 드러납니다.

정왕의 왕자 기록

책부원구 외신부 조공 中
-11월, 발해왕이 아들 대연진 등을 보내와서 방물을 바쳤다.

희왕의 왕자 기록

책부원구 외신부 조공 中
-12월, 발해왕자 신문덕 등 97인이 내조하였다.

이건 좀 논란이 있는게, 발해 왕자면 대씨인데 신문덕이라는 이름이 나온걸로 보아, 해석에 따라 발해 왕자와, ‘신문덕’이라는 신하 외 97인이 내조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름이 어쨌든 왕자가 있던건 확인됩니다.

위와 동일(책부원구 외신부 조공)
-발해왕자 대정준 등 101인이 와서 조공하였다.

자. 여기까지 봤으면 3형제 중에서 정왕과 희왕은 확실하게 사신으로 갈만한 왕자가 있었다는 것이 나옵니다.
그런데? 왜 셋은 줄줄이 형제계승을 했을까요? 장성한 아들들이 있는데?…. 이 상황에서 정황상 추측이 가능한 것은

1.진짜로 저 셋이 빨리 죽고 그 아들들도 빨리 죽었다. 거기다가 그 아들들 역시 자손을 못남겼다.
2.서로 싸우고 싸워서 전멸했다….(혹은 희왕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른 간왕이 마치 신라의 신무왕처럼 오래 살지 못했기 때문에)그래서 선왕이 이었다.
3.저놈들을 선왕이 모두 죽여버리고 자신이 발해의 왕이 되었다.

솔직히 저는 1번은 가능성이 적다고 봅니다. 물론 진짜 운이 지지리도 없어서 그럴수도 있어요.
그런데 발해 왕가의 개판 왕위계승을 보면 저는 1번보다는 2번이 더 설득력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발해의 왕위를 잇는 인물이 아예 대조영계도 아닌 대야발계의 선왕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강왕 사후 발해 왕실은, 이 셋이 서로 싸워댔을 가능성도 있고, 셋이 차례로 배신을 때리거나 정변을 일으켰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사신으로 보낼만한 장성한 아들이 있다는 것이 사료료 인증이 되었기 때문에, 셋다 요절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아비인 강왕이 요절한 형(성왕의 아버지인 대굉림)이 있고 문왕의 재위기간이 어마어마했다는 것을 보면(737~793), 나이가 상당히 들어서 왕이 된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에, 문왕의 손자인 이 삼형제 역시 즉위 당시 나이가 적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확실히 왕자가 있던 정왕, 희왕은 각자 다음 왕에게 시해와 찬탈을 당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간왕 역시 선왕 세력에게 살해되거나, 아니면 천벌을 받아 병들어 죽고, 선왕이 땡큐 하고 왕에 올랐을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그나마 이양반은 살해당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존재하네요.

(저는 선왕이 이 셋의 권력타툼 or 살해극에 반드시 관련되어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3번은 제일 섬뜩한 선택지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선택지인데다가, 선왕이 왕이 되기 전에 권지국무 작위를 가지고 있는 권신이었으며, 삼형제 말고도 그 많던 대조영계의 핏줄이 다 죽을리가 없는데 뜬금없이 대야발계가 왕위에 오른 것에서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선택지입니다.


(물론 권신의 파워로 왕이 됬을 가능성과, 간왕과 협력하여 간왕을 지원한 대신 다음 왕을 준다는 약속이 있을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저는 이 가능성으로 간왕은 아들이 없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이 선택지가 진짜일 경우, 선왕은 삼형제의 혈족을 모조리 갈아 버리고 남은 대조영계까지 모두 대숙청하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을 가능성까지 존재합니다.

(물론 삼형제 위쪽의 대조영계들은 왕위에서 멀어진 방계가 되어버린지 오래라, 굳이 신경을 안써도 괜찮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이것이 대이진, 대건황 이후에 벌어진, 발해 멸망까지 완전히 해결이 안된 발해의 내분, 분열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가정할수도 있습니다….당연히 눈뜨고 왕위 뺏긴 대조영계가 계속 가만 있을 리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발해에 관한 정식 사료가 없기 때문에 모든것이 추측의 경계선에 놓여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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